이번 여름에는 폭염으로 남부지역은 인재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아이스크림과 같이 시원한 빙과류가 없었던 옛 시절에는 아마도 얼음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을 것 같은데요~
옛날에는 겨울에 얼음을 저장해 두었다가 여름에 사용하였습니다. 이는 바로 석빙고를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석빙고에서 한여름까지 얼음을 녹지 않게 보관 할 수 있었을까요?

한국교원대 김원종 교수님의 설명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석빙고의 겉모습은 돌로 쌓은 고분과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입구를 내고, 그 양쪽 옆에는 벽을 설치해 더운 공기는 위로, 차가운 공기는 아래로 빠지도록 했다. 벽에 부딪힌 찬 공기는 소용돌이를 일으키면서 석빙고 안쪽으로 들어가 얼음을 저장하는 방의 온도를 바깥보다 낮게 한다. 공기의 대류 현상을 이용한 것이었다.
얼음을 저장하는 방은 절반은 지상, 절반은 지하로 나뉜다. 지붕은 열전도율이 낮은 진흙, 석회 등으로 덮고, 그 위에 잔디를 심어 태양의 복사열을 차단했다. 얼음과 벽 및 천장 틈 사이에도 짚이나 왕겨, 톱밥 등을 넣어 외부의 따뜻한 공기가 안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했다. 천장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주머니 모양으로 위쪽에 움푹 파진 곳을 만들어 더운 공기를 모아 두었다가, 환기구를 통해 빼냈다.
하지만 방의 내부는 열을 잘 전달하는 화강암으로 만들어 찬 공기가 쉽게 유통될 수 있게 했다. 바닥 한 가운데는 기울어진 배수로를 내어 얼음이 녹아 생긴 물이 즉시 밖으로 빠져 나가도록 했다. 얼음을 저장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 전부터였다.
신라 3대 유리왕 때 이미 얼음을 저장하는 창고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고려 때도 겨울에 얼음을 저장했다가, 음력 5월께부터 입추 때까지 나누어 사용했다. 조선시대 한양에는 궁중 안에 한 군데, 한강 근처에 동빙고와 서빙고 두 군데 석빙고를 두었다. 궁중 안의 석빙고 얼음은 왕이 사용했으며, 동빙고의 얼음은 제사를 지내는데 썼다.
서빙고의 얼음은 궁중이나 관리들에게 제공했다. 전통사회에서 얼음은 귀한 것이었다. 그래서 얼음을 훔치는 일도 종종 일어났는데, 이는 조정에서도 논란이 될 만큼 중요한 사건이었다. 한편, 이처럼 까다로운 시공을 필요로 하는 얼음 창고를 만드는 공사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고려 무신 집권기에는 최충헌의 뒤를 이어 최고 실력자가 된 최우가 얼음을 저장하는 개인 창고를 만들려고 백성을 징발해 백성들이 매우 고통스러워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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